유리가면 1984년 애니, 만화책 스토리의 핵심을 잘 캐치한 영상물

미우치 스즈에(美内すずえ)의 <유리가면>은 <왕가의 문장>과 마찬가지로 1976년에 첫 연재된 만화인데, 두 작품 모두 50여 년이 다 되도록 완결되지 않아 팬들을 오랫동안 지치게 만든 전력이 있다. 전반부 내용이 흥미진진한 순정 만화이고 엄청난 히트작들이기에 더욱 큰 답답함을 자아내는 것 같다.

인기 만화 <유리가면>, 2번에 걸친 영상화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유리가면(ガラスの仮面)> 애니메이션이 두 차례 제작된 바 있다. 23부작으로 만들어진 1984년판의 경우 아직 이야기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기에 그 당시 기준으로 '마야가 헬렌 켈러 역 더블 캐스팅으로 같은 역을 한 아유미를 제치고 조연상을 탄 이후, 츠키카게 선생님이 행사장에서 그 두 사람을 <홍천녀> 후보로 발표하는 대목'까지 다뤘다. 51부작인 2005년판엔 작품 후반부 내용인 '아유미와 마야가 <홍천녀> 후보로서의 역량을 다루는 대목'까지 등장한다.

좀 더 잘 만들어진 건 1984년 선배 라인 애니메이션?


1984년판 애니의 경우 '캐릭터의 외형적인 특징'이 원작과 비슷하게라도 가지만 2005년판에선 츠키카게 선생을 제외한 '등장 인물의 외모'를 원작 만화와는 영 다르게 갈아엎었는데, 그런 대목을 차치하고서라도 20세기에 만들어진 <유리가면> 1984년판이 조금 더 잘 만들어진 영상물이 아닌가 싶었다.

앞부분만 비교해 보더라도, (어차피 대다수의 애니메이션은 '원작 만화의 방대함'을 다 담을 수 없기에) 1984년판에선 원작의 핵심적인 대목만 캐치하여 시원스럽게 스토리 진행을 해나가고 23부 안에 '꼭 필요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잘 담아낸 데다 '캐릭터의 중요도'에 맞게 비중도 잘 배분된 편이다.

그에 반해 2005년판에선 마야가 배달부로 일하던 '동네 정경'을 불필요하게 많이, 길게 보여주는 장면이 초반부터 등장해서 좀 의아했는데, 거기에 이어 마야가 연극표를 건지기 위해 물에 뛰어들어 '수영하는 장면'을 빨리 끊지 않고 또 길게 보여준다.(아니, '스포츠물'이 아니잖아요?)

곁가지에 치중한 신판, 시원스런 극 전개의 구판


21세기에 제작된 <유리가면> 2005년 리메이크 애니메이션이 '극의 핵심'과는 상관없는 장면들에 시간을 할애하며 세월아 네월아 할 동안 1984년 20세기 버전에선 '같은 회차' 안에서 '원작 내용의 더 나중 이야기'까지 보여주면서 스토리 진행을 시원스럽게 하는 편이라 이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주인공 '마야' 역을 맡은 성우는 1기 2기 둘 다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극 안에 나오는 '연극' 편집본의 경우, 1984년판이 더 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잘 구현된 편이다.

아유미에 이어 마야가 '미도리' 역 하는 대목도 2005년판이 원작에서의 중요한 포인트를 빼먹은 반면, 1984년판에선 핵심 포인트를 잘 살렸다. 이 판본에선 마야가 '아기 보는 어린 보모' 역할 단역 했을 때 '인형 머리가 떨어져서 수습하는 장면'도 원작 만화 설정의 키 포인트를 잘 살렸는데, 2005년판에선 곁가지 설정만으로 넘어간 느낌이다.(도대체 21세기 애니 제작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원작 만화의 '핵심 포인트'를 잘 캐치하다


극단 온딘 감독의 방해로 연극제에서 다른 배우들이 참여 못하게 되어 '지나' 역의 마야 홀로 연기한 연극 장면도, 왠지 애매하게 끝내는 신 판본에 비해 구 판본이 마지막까지 극적이고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준다. 시간 관계 상 '원작 만화'의 세세한 부분을 다 담을 순 없지만 '영상물로 구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나마 애니메이션 <유리가면> 1984년 판본이 핵심 포인트도 잘 캐치하고 스토리 진행도 속시원하게 빠른 편이어서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매된 '원작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입장에서, 항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스포츠물 <에이스를 노려라!> 혹은 배우물 <유리 가면>이 '라이벌 설정' 강한 만화로 보여지진 않았다. <에이스를 노려라!>의 경우 테니스 선배인 '나비 부인'은 전혀 여주인공의 라이벌이 아니며, 코치와 학교 선배들 모두 여주를 위해 애써줘서 '여주인공 혼자 테니스 선수로서 해외로까지 쭉쭉 뻗어나가는 내용'이며, <유리 가면> 역시 안목 높은 '아유미'가 '마야'의 재능을 알아봐서 저 혼자 자신의 유일한 라이벌로 여기면서 때론 남몰래 복수도 해주는 그런 내용~(그 복수가, 마야의 정서 회복에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치는 아유미 저 혼자만의 자기 위안이기도...)

생각보다 지루했던 '홍천녀' 에피


초중반부까지 스토리 텔링이 엄청 좋았던 미우치 스즈에 원작 만화 <유리가면>은 기대와는 달리 후반부 '홍천녀 에피소드'가 제일 지루하고 재미없는 편이다. 츠키카게 선생이 그렇게 '홍천녀, 홍천녀' 부르짖더니 '뭐야? 홍천녀 대목(마야와 아유미가 '홍천녀 역할'을 두고 경합하는 내용)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없잖아~' 하면서 실망한 팬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 나도 그 후반부 이야기가 머릿속에 흡수도 잘 안되고 '심각한 수면제삘 내용'이라 보기 좀 힘들었다.

경합 대신 '더블 캐스트'로 가면 어떨까?


이전에 '헬렌' 역할도 더블 캐스팅이었는데, '홍천녀'에서도 아유미와 마야 둘 다 더블 캐스트로서 무대에 서면 안되는 건가? 경합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고, 두 배우의 '외모'와 '연기 스타일'이 너무 다르고 '각자의 장점'이 있기에 별로 그 둘이 강하게 경쟁해야 하는 라이벌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솔직히 미모도, 배우로서의 경력도 아유미가 훨씬 더 좋은 거 아닌가? 마야에겐, 아유미에게 없는 재능의 본능적인 부분과 탁월한 근성이 있는 것이고 말이다.

작중 관객들도 '아유미'의 연기가 완벽하고 훌륭하다고 하면서, '마야'의 연기도 새롭고 신선해서 그녀의 무대를 보고 싶다고 평가하니, 같은 역으로 둘 다 또 캐스팅되어서 함께 무대에 서면 될 듯...

반적적으로 느껴진 '마야-마스미'의 관계


외형적 컨셉 면에서 '홍천녀'가 신비롭고 아름다운 인물인지 잘 모르겠으며, 주어진 설정 상 그렇게 재미있는 연극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 재미없는 '홍천녀 경합' 내용 보다는, 맨 처음에 '연인 사이'로 연결될 줄 모르고 봤던 '마야-마스미의 관계'가 내겐 좀 반전적으로 다가와서 흥미롭게 느껴졌다.

배경도, 자본도, 후원자도, 아무 것도 없었던 '마야'라는 소녀가 좀 혹독하긴 하지만 '츠키카게'라는 훌륭한 '연기 선생'을 만나고 '마스미=보라색 장미의 사람' 덕분에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배우로서의 길을 쭉 걸으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 <유리가면> 스토리의 핵심적인 부분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내겐 저 세 캐릭터가 이 극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비춰줬다. 애니메이션 <유리가면> 1984년 버전은 이 핵심을 잘 살려서 제작된 편이다.

만화책은 흑백이라 장미 색상이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 직접 느낄 수가 없지만, 컬러판 애니메이션에선 <유리 가면>의 '보라색 장미'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

효과적인 압축이란 이런 것


원작 만화에선 마야 쪽 극단 사람들, 사쿠라 코지를 비롯한 아유미네 극단 사람들, 각각의 부모들, 제작 관련된 회사 사람들 등등 '등장 인물'이 많은 편이고 '스토리'도 더 세세한 편이라 애니로 만들려면 교통 정리를 좀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구판 애니메이션에선 딱 보기에도 '마야-마스미 사장-츠키카게 선생'이 핵심 캐릭터로 보이게끔 스토리 진행을 해나가며, 원작 만화에서 포인트가 되었던 부분을 압축해서 잘 보여준다.

반은 소설에 가까워서 내용이 '자세하고 방대'한 편인 '원작 만화'에 비해 종종 '생략-압축'이 가해지는 게 '애니메이션'의 특성이다. '정지된 화면의 흑백' 그림 인간을 '움직이는 컬러' 영상으로 구현해야 하니까, 제작 여건 상 모든 세부적인 스토리를 다 보여줄 순 없기도 하고 말이다.

구판 애니에서 집약적으로 다가온 '남주-여주' 서사


만화 스토리가 한창 진행되기 전에 제작된 영상물이라, 뒷부분에 나오는 '마스미의 과거 서사'라든가 마야-마스미 둘의 '애증 스토리'나 '발전된 관계'를 이 구판 애니에선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마스미'의 세세한 행동이나 비중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 압축 버전의 특성답게 첫 만남에서부터 이어지는 '마야-마스미', 둘의 인연성이 원작 만화에 비해 더 집약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애니메이션 <유리가면> 1984년 버전의 장점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