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서점'에서 실물 만화책을 구매하거나 '만화 대여점'에 직접 보러 가야 했지만, ebook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젠 만화책도 '집'에서 결제하여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고전 명작'들 중 일부는 전자책화 된 것도 있는데, 어떤 걸 봐야 좋을지 궁금한 이들에게 <독자들이 뽑은 20C 일본 만화 베스트 오십(Best 50)>은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 독자 선정 20세기 만화 Top 50 1~10위 ]
1998년에 수천 명의 독자들이 참여하여 뽑은 <일본 만화 톱 50>, 대망의 1위를 포함한 10위까지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조사한 시기가 1990년대 말이기에 모두 20세기에 발간된 만화들이다. 상위권 순위의 '작품명'과 '연재를 시작한 해', '만화가 이름'을 중심으로 어떤 작품들이 해당하는지 그 목록을 소개해 본다.
[01위] 바나나 피시
1985년~
만화가:요시다 아키미(吉田秋生)
1983~1984년 무렵 출세작 <길상천녀>로 주목받기 시작한 요시다 아키미(よしだあきみ). 그녀가 1985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바나나 피시>가 <독자들이 뽑은 20C 일본 만화 Top 50(톱 오십)>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과연 1위 답다' 싶게 <바나나 피시>는 술술 잘 읽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음 장이 궁금해질 정도로 스토리 흥미진진했다.
<바나나 피쉬(Banana Fish)> 초반에 베트남전의 군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미국 갱들 이야기 나오길래 작가가 남자인가 싶었는데 '저자 이야기' 나오는 란을 통해 곧 여성 만화가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전 순정 만화 작가들처럼 그림체가 그렇게 아름답거나 섬세하진 않지만, 원래 소설가 지망생이었다는 요시다 아키미(Yoshida Akimi)의 스토리 텔링이 무척 뛰어난 편이다.
| <바나나 피시> 주인공 - 애시 |
천재적인 두뇌에 싸움 실력까지 두루 갖춘 주인공 '애시' 캐릭터의 매력이 넘치는데, 그에 대한 마지막 대목은 '아.....!'. 잘생긴 미국 갱단의 리더 '애쉬'와 일본에서 온 청년 '에이지'의 서로에 대한 각별한 마음으로 인해 이 작품을 'BL물'로 분류한 경우도 있던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냥 브로맨스적 요소가 살짝 가미된 '버디물' 정도라 여기는 게 적당할 것 같다.
보통 정적인 흑백톤 만화책에서의 '액션씬'은 움직이는 영상물인 애니메이션에 비해 흥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바나나피시>는 '정적인 그림' 장면들로 '액션씬'을 묘사함에도 스토리 무척 흥미진진하고 그 액션 장면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독자 선정 20세기 만화 Top 50(탑 오십)>에서 남성 독자들, 여성 독자들에게 두루두루 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한 게 아닌가 싶은데, 과연 1위 할 만했고 이 만화가의 능력은 전반적으로 훌륭해 보였다.
<바나나 피시> 외, 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길상천녀> <야차> 등의 작품들도 볼 만하다.
[02위] 블랙 잭
1973년~
만화가: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
불법 진료를 하고 있지만, 다른 의사들이 고칠 수 없는 병도 척척 고치는 천재적인 의사 '블랙 잭'이 겪는 일화를 각 권마다 챕터별로 보여주는 만화. 어린 시절의 대수술로 몸이나 얼굴에 흉터와 수술 자국이 많은 블랙 잭(Black Jack). 치료 받으려는 환자들에게 고액의 수술비를 요구하는 등 돈만 밝히는 의사 같지만, 사정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때로 수술비를 도로 돌려주기도 하는 등 그는 알고 보면 인정 많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의사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테즈카 오사무(てづかおさむ). 1928년 출생이며,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로서 1940년대 후반에 이미 '만화가'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평생 그린 작품들이 엄청나게 많고, 1950년대 이후 20세기 전반에 걸쳐 '일본 만화'가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기에 '만화의 신'으로 불리워졌다.(저쪽 만화계엔 '만화의 신' 뿐 아니라 '만화의 황제, 황태자'로 불린 존재들도 있음)
<독자들이 뽑은 20세기 일본 만화 베스트 50> 중 테즈카 오사무(Tezuka Osamu)의 작품이 5편이나 들어가 있다. 과연 '만화의 신, 일본 만화의 대부'답다.
[03위] 도라에몽
1970년~
만화가:후지코 F. 후지오(藤子F.不二雄)
후지코 F. 후지오(Fujiko F. Fujio)의 <도라에몽(ドラエモン)> 한국판 주인공 소년 이름은 '진구'이다. 그가 미래에서 온 '도라에몽'이 가져다 주는 다양한 미래용품들을 가지고 이웃들과 함께 좌충우돌하는 이야기. 각 권마다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단편처럼 빼곡히 들어가 있는 만화.
[04위] 유리가면
1976년~
만화가:미우치 스즈에(美內鈴惠)
49권까지 나왔으며, 마지막 50권만 쓰면 대략 완결날 것 같음에도 수십 년 간 그 완결판을 내어 놓지 않아 독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유리가면(ガラスの假面)>. 미우치 스즈에(Miuchi Suzue)가 과연 이 만화 '완결편을 발표'할 것인지, 아님 끝까지 '미완의 인기작'으로 남을 것인지 (만화 내용 못지않게) 그 현실 결말이 궁금해진다.
<유리 가면> 외에도 다른 '배우물' 만화들이 존재하지만, 1976년 경 세상에 나온 이 만화는 그런 류 작품의 조상 같은 느낌이 든다. 기대했던 후반부 '홍천녀 에피소드'가 기대 이하였지만 '초.중반부까지의 스토리'는 술술 잘 읽히고, 전반적으로 무척 재미난 만화이긴 하다.
49권 마지막 대목을 '주인공 마야가 드디어 보라색 장미의 사람을 만나러 가려고 하는 장면'에서 딱 끊었는데, 그간 애증으로 얽혔던 '마야-마스미(보라색 장미의 사람)'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나중에 그 엔딩편을 보게 될 수는 있는 걸까?
[05위] 베르사유의 장미
1972년~
만화가:이케다 리요코(池田理代子)
'프랑스 혁명을 이 만화로 배웠어요' 하는 이들이 많았던 이케다 리요코(いけだりよこ)의 역사물 <베르사이유의 장미(ベルサイユのばら)>. 이 만화의 중.후반부는 거의 '역사적 사실 나열'이라, 개인적으로 작가의 '창작적 요소'가 더 많이 들어간 <올훼스의 창(=오르페우스의 창)>을 훨씬 더 재미나게 보았지만, 애니메이션 파급력의 영향인지 <베르사유의 장미>가 더 많이 알려진 만화 같다.
굳이 비교하자면, 영상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쪽 보다는 이케다 리요코의 원작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가 더 낫다. 만화가가 역사 관련 문헌도 많이 참고하여, 작중 '실존 인물'인 마리 앙투와네트 캐릭터를 비교적 균형감 있게 묘사하였는데, 애니 제작진 중 그녀의 안티가 끼어있는지 애니메이션 쪽에선 '마리 앙투아네트' 비중을 대폭 줄이고, 캐릭터도 좀 이상하게 묘사하고, 후반부에 그녀의 미모도 다운그레이드시켜 버렸다. 오스칼도 마리 쪽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중후반부 대장이 여자여서 대원들이 배척하는 '오스칼'의 군대 이야기, 위병대 이야기는 신생 캐릭터들의 매력도도 떨어지고 별로 재미가 없었다.
<베르사유의 장미> 원작 만화가 두 여주인공 '마리 앙투아네트-오스칼' 투톱 체제 이야기라면, 애니메이션 쪽은 '오스칼' 원톱 체제 스토리로 간다. '실존 인물' 초상화와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만화책 <베르사유의 장미>에선 '나이 들어도 쭉 미모를 유지하고 초.중반에 무척 아름답게 나오는 마리 앙투와네트의 미모와 화려한 드레스 보는 재미'도 있기에 '앙투아네트 안티'가 만든 것 같은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의 경우 그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이 든다.
<올훼스..> 쪽이 훨씬 재미있긴 하지만, 동일 작품 내에서 애니 <베르사유..>가 좀 실망이어서인지 원작 만화 <베르사유..>는 그나마 '잘 쓰여진 만화였네' 싶었다. '역사 관련 서사' 가져다 쓰면서, 이케다 리요코(Ikeda Riyoko)가 나름 연구도 많이 하고 실존했던 캐릭터를 중심 잡고 균형감 있게 묘사하려 노력한 대목은 이 만화의 큰 장점 같다.
[06위] 불새
1954년~
만화가:테즈카 오사무(手塚治蟲)
다른 작품들도 많이 쓰면서 <불새(火の鳥)>를 필생의 역작으로 만들려고 테즈카 오사무가 공들인 만화였는데, 결국 작고할 때까지 완성하지는 못하고 17권 짜리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다. 원시 시대 지구와 미래의 우주까지 넘나드는 스케일 큰 만화.
[07위] 포의 일족
1972년~
만화가:하기오 모토(萩尾望都)
테즈카 오사무(Tezuka Osamu)가 '일본 만화의 대부'라면, 하기오 모토(Hagio Moto)는 '일본 만화의 대모'처럼 생각되어진다. 실제로 '순정 만화의 신'으로 불리며, 발전기에 소녀 만화의 방향성을 확립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하기오 모토(はぎおもと)가 그리는 남성, 여성 그림체가 좀 특이한 편인데 <포의 일족(ポ―の一族)>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늙지 않는 뱀파이어 소년) 캐릭터는 타케미야 케이코 만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미소년이다.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그린 '하기오 모토'작 중 제일 인상 깊게 본 건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와 <바르바라 이계>이다. <잔.혹.신>으로 제1회 테즈카 오사무 문화상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바르바라 이계>로 제27회 일본 SF 대상을 수상하였는데,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08위] 데빌맨
1972년~
만화가:나가이 고(永井豪)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마징가 제트(Z)>의 작가 나가이 고(ながいごう). 그의 작품 <데빌맨(Devilman)>이 <독자들이 뽑은 20세기 일본 만화 베스트 50>에서 8위를 차지하였다. 1972년, 1987년에 애니메이션화 되었으며, 2018년에도 <데빌맨:크라이 베이비> 애니가 제작된 바 있다.
예전에 한국 이름을 단 해적판이 나온 적 있는데(주인공 이름-경수), 비슷하게 나온 것 같음에도 영 딴 내용이다. 나가이 고(Nagai Go)의 <데빌맨>의 경우, 원작 번역판을 봐야 내용 파악이 제대로 된다. 단, 국내 해적판은 신체 노출되는 부위를 가린 채 출판되었는데(대다수의 해적판이 그런 경우 많음), 오리지널 일본판은 초반부터 여주인공 노출씬이 대놓고 등장한다. 그래서 e북 사이트에서도 19금 만화로 분류되어 있다. <마징사가(マジンサーガ)>도 그렇고, 이 분 만화에 은근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 후도 아키라=데빌맨 |
여린 마음을 지닌 선한 소년 '후도 아키라'를 지구 인류를 구원할 인재라는 명목으로 '인간의 마음에 악마의 몸을 지닌 데빌맨'이 되게끔 꼬득인 친구 '아스카 료', 마지막에 그에 대한 반전적 요소가 등장한다. 나가이 고의 <데빌맨>은 이런 류의 다크한 내용을 다룬 후대의 작품들에 많은 영향을 끼친 만화라 할 수 있다.
[09위] 해뜨는 곳의 천자
1980년~
만화가:야마기시 료코(山岸凉子)
야마기시 료코(Yamagishi Ryoko)의 <해 뜨는 곳의 천자(日出處の天子)>는 일본색이 짙은 만화라는데, 한국에선 구하기 힘들다.
[10위] 겐지 이야기:아사키 유메미시
1979년~
그림:야마토 와키(大和和紀)+글(원작):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다른 만화가들도 종종 그린 일본의 유명한 고전 장편 소설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겐지 이야기:아사키 유메미시(源氏物語:あさきゆめみし)>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이카라씨가 간다> <베이비시터 긴!> 등의 만화 작가인 야마토 와키(Yamato Waki)가 그림을 담당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