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의 기사, 왕자 공주보다 해적 천사 마녀 딸 등 조연들이 매력적

테즈카 오사무(Tezuka Osamu)는 '만화의 신'답게 정말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남겼다. 그 중, 그가 20대 중반에 첫 연재를 시작한 <리본의 기사>는 '남성 만화가가 쓴 순정 만화'로, 동화 같은 느낌을 주는 왕자와 공주 이야기이다. 1950년대에 발표되었으니, 남장 여인물의 시초격인 작품이 아닌가 싶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3권 짜리 만화 <리본의 기사(リボンの騎士)>에서 첫눈에 서로 반하여 결말부에 이뤄지는 '공주와 왕자'는 따로 있지만, 이들 주인공 보다는 조연 캐릭터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인상적이었다.

남성 작가가 소녀 만화를 쓰면 이런 느낌?


'순정 판타지물'인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의 이 극에서 주인공 사파이어가 태어나기 전 천상계에서 원래는 그녀에게 '여자 마음'을 먹여 여자애로 태어나게 할 계획이었으나, 장난기 많은 꼬마 천사 칭이 먼저 '남자 마음'을 먹인 관계로 하늘 나라 아버지께 혼이 난다. 이후, 칭은 '사파이어의 남자 마음을 거둬오라는 임무'를 부여받고서 하계(인간들이 사는 세계)로 잠시 쫓겨나게 되는데...

상계에서 '남녀 마음'을 다 먹은 사파이어는 하계의 실버랜드 공주로 태어났다. 이를 발표한 박사의 발음이 이상해서 '왕녀가 태어났다'를 '왕져다' 식으로 알아들은 이들이 많았기에 백성들이 '왕자'가 탄생한 걸로 오해, 궁정에선 사실 관계를 뒤집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왕자'로 키우게 된다. 원래는 '공주'인 게 맞기에 하루의 대부분은 '왕자'로, 잠깐 동안은 '왕녀'로서 일상을 보내는 사파이어.

실버랜드의 법 개정이 되기 전인 이 시기엔 남자만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공주의 친척인 대공(악당 1) 듀랄민이 서열 2위인 자신의 얼간이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신하(악당 2) 나일론과 함께 호시탐탐 '성별이 수상쩍은 사파이어'를 제거하기 위해 노린다.

흑발 왕자-금발녀-리본 기사, 1인 3역의 사파이어


15세가 된 사파이어는 축제 때 '화려한 드레스에 금발 가발'을 착용한 뒤 여자로 변신하여 이웃 나라의 프란츠와 춤추게 된다. 골드랜드의 프란츠 왕자는 긴 금발 머리의 그녀에게 반하게 되었지만, 12시만 되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야 했던 신데렐라처럼 사파이어 '공주' 역시 곧 '짧은 머리 흑발의 왕자'로 돌아와야만 했다. '왕자'로 키워졌기에 사파이어가 검술엔 능한 편이다.

둘이 '동일 인물'이란 사실을 모르는 프란츠는 악당들의 간계로 인해 사파이어가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단 오해를 하게 되고, 나중엔 사파이어 왕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금발녀를 납치했단 의심까지 하게 된다.

즉위 직후의 사파이어는 듀랄민 대공 일당에게 '여자'임을 들켜 왕좌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후 모친과 함께 원형 탑에 갇힌 채 생활하지만, 쥐들의 도움으로 '비상구'를 발견한 뒤 가끔 밖에 나가 '리본의 기사'로 활약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목이 <리본의 기사> 같지만, 이 3권 짜리 만화에서 여주가 '리본 기사'로 분한 장면은 쥐꼬리 분량 밖에 안된다. 대다수의 내용은 '선량하긴 하지만, 어딘지 무기력해 보이는 사파이어'가 악당들이나 다른 조연 캐릭터들과 얽히고 섥히는 내용이 대부분.

주인공인 '사파이어 공주(또는 왕자)'가 몸이 재빠르고 칼싸움도 잘하고 미모도 출중한 편이지만, 캐릭터로서의 어떤 특별한 개성이나 매력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오래 전 동화책들에 나오는 '전형적인 착한 캐릭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첫눈에 반한 금발녀(알고 보면 사파이어)에게 순정을 바치는 이웃 나라의 '프란츠 왕자' 역시 설정 면에서의 임팩트는 그리 크지 않다.

이 극에서의 악당 1~2 중 실질적인 행동 대장인 '나일론'과 주인공의 여자 마음을 노리는 '마녀(악당 3)'의 악행력과 행동력이 대단하며, '서로 사랑하는 왕자와 공주'는 이들의 음모에 수동적으로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주인공 왕자와 공주보다 조연 캐릭터들이 매력적


그 안에서 캐릭터적인 매력이 강하게 다가오는 쪽은 원래 골드랜드의 첫째 왕자이지만 해적선을 이끄는 선장이 된 블라드(본명 하인리히), 천상계로 빨리 되돌아가는 걸 포기하고서 곤경에 처한 사파이어를 도우려 하는 꼬마 천사 칭, 자신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포기하기 싫어서 엄마 말을 거역하고 사파이어 공주와 프란츠 왕자를 도와주는 마녀의 딸 헤케트 등이다.

마녀인 데빌 백작부인은 여주인공이 지닌 '여자 마음'을 천방지축인 자신의 딸 헤케트에게 먹여 상냥한 요조숙녀로 만든 뒤 프란츠 왕자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왕자의 나라 골드랜드를 먹으려는 자신의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하지만 마녀의 딸은 달랐다. 기품 있는 숙녀로 변하여 왕자의 부인이 되기 보다는 '빗자루 타고 날아다니고, 두꺼비 사냥을 다니고, 박쥐와 술래잡기 하는 삶'이 더 좋은 헤케트는 마녀인 엄마가 빼앗아온 '사파이어의 여자 마음'을 되돌려 주려 하고, 그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과 결혼하려 했던 프란츠 왕자를 사탄 대마왕의 소굴에서 탈출시킨다.

왕자 출신 해적의 순정적인 사랑


2권부터 나오는 해적선 선장 블라드는 원래 골드랜드의 첫째 왕자인 '하인리히'로, 프란츠의 형이기도 하다. 숙부의 심술에 의해 이탈리아의 한 귀족 부부에게 맡겨져 천덕꾸러기로 자라온 그는 자신이 어느 나라 왕자였단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태어난 나라'가 어디인지 찾기 위해 배로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해적이 된 것이었다.

무리들을 거느린 해적선 선장이지만, 외롭게 자라온 '블라드'는 우연히 알게 된 '사파이어'가 남장을 하고 있었음에도 여성임을 금세 알아채고 사랑에 빠진다. 이후에 악당들의 계략에 의해 그녀가 위기에 빠졌을 때 발빠르게 나서서 도와주고 '나일론의 화살에 의해 중태에 빠진 사파이어'를 구하기 위해 흑진주섬에서 특효약을 구해오기도 하는데... 그에게 약간 마음 있는 흑진주섬 여왕이 질투심에 의해 파놓은 함정에도 여주인공 사파이어를 살리기 위해 결국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블라드는 '용감하고 매력적이면서 순정 넘치는 캐릭터'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결국 사랑을 이루는 주인공 남녀'보다 '조연인 해적 블라드' 캐릭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으며 그의 등장씬도 흥미로웠는데, 3권 후반부에 '통통 튀는 마녀의 딸 헤케트'와 '알고 보면 골드랜드 왕자인 멋진 해적 블라드'가 퇴장하고 나서의 스토리는 살짝 맥빠지는 느낌 들었다.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프란츠를 아름답다고 칭송하면서 그를 차지하기 위해 프란츠 왕자와 사파이어 공주의 사랑을 방해하는 대목은 그저 그런 느낌 들었던... 귀여운 천사 칭이 끝까지 나와서 그나마 좀 나았다.

리본의 기사 사파이어, '남장 여자' 캐릭터의 원조


2권 짜리 <리본의 기사-소녀 편>도 있는데, 그건 압축 버전 같은 느낌으로 '그림체'나 '등장 인물'이 살짝 다르다. 비슷한 스토리 내에서 '블라드' 같은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도 등장하고 '악당들 활약상'에 대한 임팩트도 더 큰 건 3권 짜리 <리본의 기사>가 아닌가 싶다.

다수의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에 나온 <리본의 기사>에서 만화 속 '남장 여자' 캐릭터의 원조격인 사파이어 공주'와 그녀의 파트너인 '프란츠 왕자'보다 여러 '조연 캐릭터'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순정남들을 첫눈에 반하게 만든 여주인공 '사파이어'가 꽤 예쁘게 그려졌고, 테즈카 오사무(てづかおさむ)가 그린 극 중 '동물 캐릭터'들도 표정이 살아있고 무척 귀여워서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