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적들'을 다룬 만화
<바사라>와 비슷한 유형의 만화로 타케미야 케이코(竹宮惠子)의 <파라오의 무덤(=파라오의 전설=왕자 사리오키스)>, 황미나의 <아뉴스데이>가 있다.
<파라오의 무덤>에선 왕족인 남자 주인공의 여동생이 자기네 나라를 멸망시킨 쪽 왕(작중 최강 빌런)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맨 처음에 서로의 그런 관계를 모르고서 좋아지게 되는 내용이다. <아뉴스데이>에선 멸망한 소국의 공주가 정복 사령관으로 왔던 강대국 로마의 장군과 사랑에 빠지게 되며, '남자'는 본인들의 그런 관계를 모른 채 구애하고 '여자' 쪽에선 원수인 걸 알고서 처음엔 그를 싫어하다가 점점 상대가 좋아지게 되는 설정.
전자의 작품들에선 그 커플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지만, 타무라 유미(田村由美)의 <바사라(BASARA)>에선 각각 '적의 수장'이었던 남녀 주인공이 살아서 맺어지긴 한다.(그 대가로 남주의 한쪽 팔이 실종되지만... 아니, 있어도 못 붙임. 현대의 <블랙 잭>이란 의사를 찾아가면 붙여줄지 몰라도...)
황폐화된 가상의 미래 시대 배경
만화들 중엔 '큰 전쟁이나 자연 재해 등으로 멸망한 지구-사막화 되거나 황폐해진 지구의 먼 미래 시점'이 시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바사라> 역시 그러한데, '300년 뒤 미래'라고는 하지만 옛날식 건물이 등장하는 왕정 시대라는 대목과 등장 인물들의 의상을 보면 '300~400년 전 먼 과거'의 가상 왕조 얘기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혁명군이 왕정을 무너뜨리다
타무라 유미(Tamura Yumi)작 <바사라> 내용을 초간단 요약하자면 [미래 시대에 '타타라' 명칭으로 불리던 주인공 소녀를 중심으로 같은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들이 '혁명군'이 되어 그때까지 몇백 년 간 존속해온 '왕정'을 무너뜨리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작중 미래의 '일본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개인으로 봤을 때 그렇게까지 막 사악한 사람이라고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왕은 결코 아니다. 당시엔 아게하 일족 같은 노예들도 있었고, 무서운 음모를 꾸미는 권력층의 비리도 있었고, 핍박 받으며 힘들게 사는 서민들도 많았으니...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볼 수 없는
전체 국왕이 자신의 여러 자식들에게 일본 섬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구역 나눠서 다스리게 했는데, 다른 형제들은 몰라도 <바사라>의 남자 주인공인 '슈리'는 사실 그가 통치하는 지역의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좋은 왕이었다. 절친인 '시도'와 함께 황폐한 사막 지역을 비옥한 땅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상업이 번성하게 하는 등 자기 구역 백성들에게 만족감을 안겨준 통치자였기에...
그랬던 적왕 '슈리'도 아비에게 세뇌(?)당해서 '(예언에 의하면 그는 역모를 일으킬 위험한 인물이니) 타타라는 제거해야 한다'가 뇌에 주입된 탓에 '백호 마을'로 쳐들어가 마을 족장과 원조 타타라(여주의 쌍둥이 오빠)를 제거한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얼떨결에 남장하고서 '타타라' 행세하던 여주인공 '사라사'는 그 길로 쭉 '예언의 아이'인 '타타라'로 살아가게 되는데...
혈육의 원수와 사랑에 빠지다
남자 주인공 입장에서 보면 '백호 마을 족장 아들'이 자기네 왕조를 무너뜨릴 자로 예언되어 있었기에 나름 명분 있는 짓을 한 건데, 여자 주인공 입장에서 보면 상대방이 '자신의 혈육을 죽인 원수'가 되는 것이다. 사건이 있던 날, 적왕의 오른팔인 장군이 '사라사의 오빠'를 킬(kill)한 뒤 목을 베었고 적왕 슈리가 '사라사의 아버지'를 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 장군이 미모 때문인지 '사라사의 엄마'를 데려간 뒤 여인으로서 사랑하게 되어 자기 집에서 계속 돌봐주고, 그 엄마도 '자기 아들을 죽인 장군'에게 사랑까진 아니더라도 그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다 나중에 미묘한 감정이 생기게 된다. '타타라'로 살아가던 '사라사'는 홀로 온천에 갔다가 우연히 '슈리'와 인연 맺게 되어 그가 원수인 적왕인 줄도 모른 채 사랑하는 남녀로 발전하게 되고...
'순정' 부분만 떼어놓고 봤을 때, 만화 <바사라>는 한마디로 '백호 마을' 족장집 여인들이 그 집안 남자들을 죽인 원수 같은 딴동네 남자들과 연분 맺게 되는 내용.
슈리와 사라사, 긴장감 최고조의 장면
살아남은 백호 마을 사람들에겐 당연히 적왕 무리들이 '원수'이며, 나중에 '사라사(타타라)'를 중심으로 모인 혁명군과 '적왕 슈리'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 전투도 벌이게 된다. 아직까진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기에 힘든 순간에 서로를 떠올리며 심적으로 의지하고, 어느날 밤엔 남녀 주인공이 드디어 둘만의 거사(?)도 치르게 되는데...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양 진영의 전투 도중 '슈리'와 '사라사'가 드디어 '서로가 적군의 수장임을 알게 되는 장면'이 만화 <바사라>에서 긴장감 최고조인 장면 아닐까 싶다.
이외에도 여주와 그 무리들이 여러 지역을 돌면서 이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지만, 큰 틀 안에서 보자면 <바사라> 후반부 쯤에 나오는 '사랑했던 남녀 주인공이 서로 적임을 알게 되는 장면'의 임팩트가 무척 크다. 하지만 자잘한 재미는 다른 일화들에서 얻을 수 있고, 캐릭터적인 매력은 극의 제3주인공 쯤 되어 보이는 '아게하' 쪽이 가장 크다.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게하
실제로, 조사해 보니까 타무라 유미의 만화 <바사라>에서 제일 인기 캐릭터는 '아게하'가 맞는 것 같다. '아게하' 다음으론 적왕 '슈리'가 아닐까? 27권작이라 되어 있지만, 뒷부분은 '외전'이고 <바사라> 25권까지가 '본 내용'이다. 만화 전체를 읽어 보면 왜 '아게하'가 인기 캐릭터인지 알 수 있다.
| <바사라> - 아게하 |
초반에도 그렇지만 중반부 지나 이 인물이 굉장히 큰 존재감으로 다가오며, 마지막까지 멋진 건 혼자 다 하는 데다 독자들의 가슴을 마구 쥐어뜯어 놓아서... 아무튼 '아게하'가 가장 멋진 캐릭터는 맞는 듯.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의를 위해 희생도 불사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할 줄 알고, 원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삶...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의 인기엔 생김새도 한몫 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모 겪던 어린이 시절에도 넘넘 이쁜 아이였고, 성장해선 훤칠한 체격에 얼굴 이목구비도 반듯한 편이다. 눈빛도 분위기도 다 멋지고... 솔직히 '시각적'으로도 큰 즐거움 주긴 했어.
| 아게하 - 긍지 높은 '사막의 푸른 귀족' 후손 |
어린 시절의 '사라사' 구하려다 한쪽 눈 잃게 되어 그 뒤로 쭉 애꾸눈으로 나오는데, 뒤에서 혁명군 지원하면서 댄서로서 공연도 하는 '아게하'의 경우 한 쪽 눈 '안대'도 특유의 패션인 것처럼 느껴진다. '캐릭터'도 처음부터 끝까지 멋있지만 '인물'도 되니까... 그러니, 양쪽 눈 다 나오는 다른 등장 인물들 제치고 '한쪽 눈빛 발사'만으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 남긴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