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동물 초창기 작품인 일본 순정 만화 <왕가의 문장>은 1976년 첫 연재 이후 50년 가까이 장기 연재 중인 역사 판타지물이다. 현재, 국내의 여러 인터넷 서점 및 만화를 볼 수 있는 포털 ebook 코너를 통해 '전자책'으로도 접할 수 있다.
비슷한 계열의 순정 만화
<왕가의 문장>과 비슷한 계열로 <하늘은 붉은 강가> <바람의 저편> 같은 작품이 있다. 세 편 모두 '아담하고 적당히 예쁘장하면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며, 현재 살고 있는 곳과는 다른 시공간으로 건너가 그 차원에서 살고 있는 '잘생기고 멋진 남자 주인공'과 사랑도 하고 모험도 하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 여기서 '모험'이란? 수시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 '고난의 상황'과 '개고생'을 겪는 걸 뜻하기도 함 ]
한때 일본 만화 <왕가의 문장> 번역본이 '실물책'으로 정발되었다가 중단된 적이 있다. 그 이전부터도 순정 만화 매니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긴 했지만, 오래 전엔 이 타이틀이 아니었었다.
만화 <왕가의 문장> 다른 제목
우리나라에서 원작 만화의 삐리리판이 난무했던 '대해적의 시대' 때 <왕가의 문장>이 <나일강의 소녀> <나일의 딸 캐롤> <나일강이여 영원히> <나일강의 소녀 캐롤> <나일강의 여신>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예전에 인기 끌었던 소설 '람세스'붐을 타고 <신의 아들 람세스> <태양의 아들 람세스>란 제목으로도 출간되었는데, 이 시리즈가 제일 길게 나온 버전이 아닌가 싶다. '만화' 이외에 <나일에 피어난 사랑>이란 순정 '소설'로 나온 적도 있다.
원 제목은 <왕가의 문장(王家の紋章)>이며 '호소카와 치에코(細川智栄子)'와 '후민(芙~みん)'이라는 일본의 자매 만화가가 지은 것이다.
ebook 만화 시대로 전환 후 발매 현황
당시에 해적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게, 원작자가 해외 출판을 꺼려서 정식 라이센스 허가가 나지 않았다. 알음알음으로 재미있는 만화는 이웃 나라에도 소문이 나기 마련인데, 정식 번역판이 없으니 '이 재미난 만화를 너네만 보겠다고?' 이런 마인드로 삐리리판 제작?(물론 제작자들은 '판매'와 '대여'로 돈도 좀 만지고...) 그래서 국내 순정 만화 팬들도 늠름한 남자 주인공 '멤피스'와 사랑스런 '캐롤', 이 파라오 부부의 스펙타클 국제적 규모의 러브 스토리와 이들 미모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는가?
다행히 'e북의 시대'인 현재는 원작자인 호소카와 치에코의 라이센스 허가가 나서 한국의 ebook 사이트에서 <왕가의 문장>을 정식 번역본으로 구매해서 읽을 수 있다. 일본에선 현재 70권까지 나와있는 것 같던데, 국내 번역본은 62권까지 나와있는 상태다.(2025년 봄 기준. 향후, 바뀔 수 있음)
1권에서의 여주인공 차원이동 계기
현대의 미국에서 고고학 공부에 매진하던 여주인공 캐롤(해적판 이름-제니), 어느 날 본인의 의도가 아닌 남주 누나 아이시스에 의해 차원이동 당하게 된다. 여주 아버지가 자본을 댄 유물 발굴 현장에서 도굴꾼들에 의해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나 보석 등 여러 유물들이 건드려지게 되고, 이에 현대의 시간대에서 깨어나게 된 고대 여성 아이시스가 저주를 내린 것이다. "왕의 잠을 방해하는 자에겐 죽음의 날개가 스치리라" 하면서...
불쌍한 척 접근하여 '친절한 캐롤'네 집에 머물던 '아이시스'는 도굴꾼과 여주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명을 킬(kill)한 뒤 그 딸인 캐롤을 고대의 이집트로 데려가 버리고 마는데... 원래 하려던 독사 공격에 실패했기에 '고대로 건너가 노예로 살면서 평생 고생해 봐라~' 이런 의도로 데려간 것이었다. 주문이 걸려있던 점토판이 깨져서 급하게 고대로 되돌아가야 하는 아이시스의 타겟은 원래 큰오빠 라이언이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대타로 캐롤이 끌려가게 되었다.
의도치 않았던 삼각관계
현대인 시선에서 봤을 때 많이 이상하게도 '고대 이집트'에선 남매끼리 결혼하기도 했었다. 아이시스 본인이 결혼 상대로 생각하고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엄청 사랑해 온 배다른 남동생 멤피스(해적판 이름-람세스)... 그 멤피스는 고대 이집트로 건너온 파란 눈동자의 금발 머리 소녀 캐롤에게 반해 버리고 만다.
'나쁜 의도'는 역시 '나쁜 결과'를 낳는지, 현대에서 열심히 고고학 공부나 하던 캐롤을 가족(엄마, 오빠 2명)과 떨어뜨려 놓고 몇 천 년 전의 고대 이집트로 데려가 버린 아이시스는 본의 아니게 그녀와 연적이 되어 진한 '실연의 아픔'을 겪게 된다.
현대에도, 다수의 경우 '결혼'은 남자 쪽이 여자를 많이 좋아하고 적극성을 보여야 성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작중의 멤피스는 절대 권력의 파라오인 데다가 더더더 본인이 원하는 여성과 맺어지길 원하는 마초적 기질 좀 가미된 완전 옛날 남자! 오매불망 멤피스 부인이 되는 것만을 꿈꿔온 아이시스의 애절한 구애는 당연히 무시되고, 첫눈에 반해버린 캐롤에게 노빠꾸 직진으로 다가가던 이집트 왕 멤피스는 결국 캐롤을 왕비로 맞게 된다.
타임 슬립(time slip)으로 맺어진 '멤피스-캐롤 커플'이 우여곡절 끝에 성대한 혼례식 후 정식 부부가 되는 장면이 <왕가의 문장> 13권 쯤에 나온다. 이제껏 발매된 건 70권(국내 번역판 62권) 정도이다. 그러니까 '시공간을 넘어서 인연을 맺고 서로 사랑하게 된 남녀'가 '결혼'하는 걸로 끝은 아니며, <왕가의 문장>의 경우 그 이후의 이야기가 에피소드 더 풍부하고 재미난 편이다.
대를 이은 연재
작가가 이제 '고령의 나이'이고 진작에 호소카와 치에코-후민 자매의 2세(딸) 합류로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말이 있다. 최근에 나온 스토리는 초.중반부 내용에 비해 그림체 퀄리티 및 신생 캐릭터의 매력도, 스토리의 흥미로움이 많이 떨어져 '웬만하면 빨리 완결 지을 것이지' 싶은 생각 들곤 한다. 무슨 우동집도 아니고, 만화 연재를 가업으로 물려주나 싶기에...
이들이 쓴 작품 수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으며 '대해적의 시대' 때부터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건 '나일 소녀', '람세스' 등의 문구를 제목에 붙였던 <왕가의 문장(王家の紋章)>이나 <백작의 딸>, <귀공녀 코린느>, <백작의 딸 코린느>로 알려진 <백작영양(伯爵令嬢)> 정도이다.
그들 입장에선 역사 판타지 <왕가의 문장>이 일본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알려지고 가장 큰 수익을 안겨다 주는 '효자 상품'이니까 대를 이어 연재하는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50년 동안이나 끝내지 않는 건 좀 심하단 생각이 든다. <왕가의 문장>과 더불어, 1976년 첫 연재 이후 50여 년 간 완결되지 않고 있는 동갑내기 순정 만화로 <유리 가면>도 있다.
완결 될지 안될지는 며느리도 몰라?
호소카와 치에코(細川智栄子) & 후민(芙~みん)의 <왕가의 문장>은 70권이 다 되도록 아직 수습되지 않은 내용이 많은 데다 이야기의 무대를 자꾸 확장하는 느낌이지만, 49권까지 발매된 미우치 스즈에(美内すずえ)의 <유리가면>은 조금만 더 쓰면 끝낼 수 있음에도 그 한 두 권을 안 쓰고 오랜 세월 개기고 있는 걸 보니 더 사악해 보인다.
기본 소재나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인기작이면서 몇 십 년 간 완결판 안 나오고 있는 사악한 순정 만화'란 측면에서 <유리가면>과 <왕가의 문장>은 또 다른 의미의 '같은 계열 작품'이기도 하다. 두 만화 중 언젠가 완결되는 한 쪽이 있긴 할 건지, 아님 두 편 다일지, 것도 아님 둘 다 미완결로 남을 것인지, 미래의 일이 살짝 궁금해진다.